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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미마을소개 - 마을소개

'五美' 금환락지(金環落地)의 명당 마을

오미마을 사진

● 마을 역사

영조 52년에 당시 삼수부사였던 문화 류씨 류이주가 풍수지리설의 금환락지를 찾아 옮겨 와 아흔아홉 칸의

대가를 건축하고 문화 류씨 촌락을 이룩하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.

류이주가 정착하기 이전에는 오동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즉 내죽, 하죽, 백동, 추동, 환동의 다섯 동네를

말함이며 오미리로 개칭한 것은 류이주가 아흔아홉 칸의 대가를 건축하면서부터 다섯 아름다움이 있다 하여

오미동 또는 오미리라 개칭하였다고 한다. 그 다섯 가지 아름다움은 월명산, 방방산, 오봉산, 계족산, 섬진강을

이른다. 현재 행정구역 상의 명칭인 오미리는 내죽, 하죽, 오미의 세 마을을 아우르는 이름이다.

● 마을 풍수

오미동五美洞 은 지리산의 노고단이 진산인 조산이 되고 노고단에서 남쪽으로 빠져 내려와 형성된 형제봉이

주산이 된다. 앞으로는 넓은 들이 펼쳐지고 들 앞에는 섬진강이 있으며 섬진강 건너 오봉산이 안산이 된다.

그 너머 계족산이 조산이 된다. 동쪽으로는 왕시리봉이 좌청룡이 되며 서쪽으로 천왕봉이 우백호가 된다.

이로서만 보아도 앞으로 물이 흐르고 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진 배산임수의 명당 터임을 쉽게 알 수 있다.

일제시대 때 무라야마(村山智順) 라는 사람이 <조선의 풍수> 란 책을 썼는데 이런 대목이 나온다.

<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금내리 및 오리미 일대를 1912년께부터 이주자들이 모여들었다.

충청남도, 전라남북도, 경상남북도 각처에서 꽤 지체 높은 양반까지 와서 집을 짓기 시작하여 현재(1929년)

이주해 온 집이 일백여호에 달한다.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. 비기(秘記)에 말하기를 이곳 어디에

'금귀몰니(金龜沒泥)' '금환락지(金環落地)' '오보교취(五寶交聚)'의 세 진혈이 있어 이 자리를 찾아 집을

짓고 살면 힘 안들이고 천운이 있어 부귀영달한다고 전해온다. 이 세 자리는 상대上臺, 중대中臺, 하대下臺

라고도 하며 하대인 오보교취 자리가 제일 좋은 자리라 한다.>

오미마을 사진

류제양이 쓴 《오미동려사五美洞閭史》에서는 다섯 가지 아름다움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기도 한다.

- 마을의 안산인 오봉산의 기묘함, 사방으로 둘러싸인 산들이 오성五星이 되어 길함,

물과 샘이 풍부함, 풍토가 질박함, 터와 집들이 살기에 좋음 -

오미동에 자리 잡은 여러 집안들의 내력은 다양하나 공통적으로 어지러운 시절을 피해 길지를 찾아 들었다는

사실은 명확할 것이다. 하지만 한 집안과 개인이 흥하고 쇠하는 근본 이유는 집터와 묘자리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.

다만 '그런 땅' 이란 심리적인 위안은 있었을 것이다.

힘든 시간과 역사의 한 복판을 가로질러 온 오미동사람들에게 그 정도의 위안은 충분히 허락된 마을의 자부심

같은 것이 아니겠는가. 오미동과 운조루 사람들은 대부분 성실한 노동이 일상화된 농부로 살아가고 있다.

(57624)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운조루길 49-1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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